재단법인 중남미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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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슬기롭고 값진 문화의 보석 - 중남미문화원과 박물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문화는 지팡이를 필요로한다. 의지할 페트론이 없으면 홀로서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세계의 유수한 박물관들도 알고 보면 예술 애호가들의 개인 컬렉션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문화부가 생기고 내가 그 일을 맡았을 때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문화의 페트론 만들기였다. 재력과 권력이 있는 기업인이나 정치인들 그리고 문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고리쇠가 되어주는 길을 닦기 시작한 것이다.



시공의 울타리를 넘어 불어온 바람

우선 규제 일변도의 법부터 고쳐 누구나 뜻만 있으면 쉽게 박물관을 지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개인의 골동품이나 예술품들이 만인이 찾고 즐기는 공중의 전시품으로 빛을 발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법이 개정되자 과연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생겨났다. 새로 태어나는 보석처럼 빛나는 사설 박물관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모자를 벗고 깊은 경배를 드렸다. 그러나 중남미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는 모자를 벗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부끄러움이 앞섰다. 내가 새 박물관 법을 만들면서 상상했던 세계는 기껏 한국의 문화를 보존하고 공개한다는 울타리 안의 꿈이었다. 그런데 고대의 마야문명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의 중남미 문화에 이르기까지 내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공간과 시간의 울타리를 훨씬 뛰어넘은 문화의 위대함이요, 소중함 그 자체였다. 더구나 그것을 한 개인의 힘으로 해 낸 것이다. 메소 아메리카의 마야, 아즈테카, 쪼로떼가, 테라코타(토기)와 석기, 카리브의 따이노 목기, 우리에게도 친근감을 주는 인디오 가면과 공예품, 가톨릭을 받아들인 식민기의 종교화와 조각, 골동가구 등 참으로 다양하고 이채로웠다.

외교적 자산을 풍부하게 만든..

문화적 차원만이 아니다. 외교적 차원으로 보나 국부의 경제적 차원으로 보나 분명 그것은 기적이 낳은 값진 구슬이었다. 때 묻지 않은 인간의 원체험이 거기 있었고,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똑같은 생명력이 때 묻지 않은 신선한 고원의 바람으로 불고 있었다. 내 상상의 카달로그에 없었던 중남미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그 때의 법 개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처럼 아름답고 당당하게 서있는 박물관의 한 작은 주춧돌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보람을 느꼈다. 잠시나마 교단을 떠나 장관직을 맡았던 그 날들이 내 생애에서 결코 욕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 령 전 문화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