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중남미문화원

중남미 소개

중남미 역사와 문화

1. 최초의 아메리카인

구대륙인 아시아나 유럽에 비해 아메리카에서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지 않은 약 2-3만 년 전이다.
최후의 빙하기가 끝날 무렵 몽고족들이 시베리아에서 베링해를 거쳐 알래스카를 통해 북아메리카로 들어왔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북에서 남으로 서서히 남하해 내려왔다.

멕시코 계곡에서 약 1만 년 전의 맘모스와 인골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 인류는 수렵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냥을 주축으로 하는 수렵민의 생활은 B.C. 6000~4000년에 걸쳐 절정기를 이루었다. 기온도 높고 강수량도 풍부했다.
그러나 B.C. 3000년 전, 즉 지금부터 약 5000년 전 기온이 내려가면서 건조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인류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찾았는데, 이것이 바로 농경의 시작이었다.
농경은 B.C. 7000년경부터 식물을 채집하면서 반 정착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들 수렵민은 B.C. 5000년경에 이르러 감자와 고추의 재배법을 익혔다. B.C. 3000년경에는 원시적이지만 옥수수를 재배할 줄 알았으며, 이때부터 메따떼(Metate)라 불리는 돌절구가 쓰이기 시작했다.
한편 에콰도르에서 페루에 이르는 해안에서는 풍부한 어족 자원에 힘입어 어로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들도 B.C. 2500~1200년에 이르러서는 반농·반어적인 생활 형태를 띠게 되었다.

2. 아즈텍 (Aztec A.D. 1428~1521)

아즈테까(Azteca) 문명은 지금의 멕시코 지역에 존재하던 제국이다. 수도는 멕시코 중부의 텍스코코 호수 중앙의 인공 섬에 있던 테노치티틀란이었다.
마야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수많은 자연의 신 중에서 태양신을 최고로 숭배했으며 태양신의 몰락을 막기 위해 사람의 피와 심장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태양의 피라미드’를 비롯한 많은 석조 건축물이 현재 멕시코에 남아있다.

아즈텍인들은 특히 교육을 중요시여겨 가정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을, 어머니는 딸의 교육을 담당했다. 15세나 16세부터는 일반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와 종교적인 의무를 가르치는 회당에서 공부하도록 하였으며 무술, 예술, 역사, 전통, 종교 등을 가르쳤다. 상업이 발달하여 각 도시의 중요한 장소가 시장으로 사용되고, 매매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분쟁을 해결하는 심판관이 있었다. 1519년 11월 8일, 에스파냐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들어갔다. 아스텍 제국의 통치자였던 몬테수마 2세는 백인인 코르테스와 그의 무리를 아즈테까 문명의 전설에 나오는 깃털 달린 뱀 께짤꼬아뜰로 여겨 환대했으나 내부의 정치적 위기를 이용한 코르테스의 계략으로 1521년, 코르테스의 군대에게 정복당했다.

3. 마야(Maya A.D. 250~900, 950~1539)

마야 문명은 고전기와 신 제국으로 나누며 고전 마야 문명은 A.D. 250년경에 시작되었다. 그들은 석조각을 세우고 연호를 기록하였으며, 태양력에 의한 1년을 365일로 정했고, 춘분과 추분도 알고 있었다. 과테말라의 띠깔(Tikal) 등이 고전 마야 문명의 중심지이다. 600년에서 약 200년간은 고전 마야 문명의 절정기로 이때 그들은 2미터에서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돌기둥에 마야 숫자를 기록해 놓았다.

온두라스의 꼬빤(Copan), 멕시코의 빨렌께(Palenque)가 그 중심지이다. 철기 사용을 몰랐던 마야인은 모든 물건을 돌과 나무로 만들었으며, 천문학과 수학이 매우 발달했다. 10세기 말엽 마야문명은 갑자기 멸망하는데, 그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신 마야 제국은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에 똘떼까족이 북방에서 유까딴 반도로 이동해 오면서 시작되었다. 치첸잇싸(Chichen Itza)가 중심지이며 께짤꼬아뜰이 주신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을 제단에 안치시키고 그 심장을 석재 칼로 도려내어 바치는 인신공양은 최고의 의식이었다. 치첸잇싸와 더불어 욱스말(Uxmal)과 마야빤 (Mayapan)등 3대 도시는 마야 문명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다. 이러한 후기 마야 문명은 15세기 중엽에서 16세기 초엽에 이르러서는 권력싸움이 극대화되어 거의 무정부 상태에 이르렀다. 16세기 초 스페인인이 이곳에 왔을 때는 이미 찬란한 마야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4. 잉카 (Inca A.D. 1438~1533)

잉카 문명은 페루 지역에서 발달한 나스카, 모치카 문명 등 여러 문명이 합쳐 이루어졌다. 신화에 따르면 태양신은 자신의 아들 망고 까빡과 딸 마마 오끄요를 지상에 보냈으며 이들은 황금 지팡이가 박히는 기름진 땅을 찾아 헤매다가 ‘세상의 배꼽’이라는 뜻의 쿠스코(Cuzco)에 도착하여 수도로 정했다. 초대왕 망코 까빡에서 8대 비라코차까지 약 200년간은 전통 잉카제국 시대로, 외침을 물리치고 쿠스코 계곡을 평정, 태양신 숭배와 농업을 주축으로 하는 잉카제국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15세기 중엽, 제9대 빠치쿠치 잉카 유빵끼(Yupanqui)가 왕이 되었다. 그는 태양신의 신전을 건립하고, 우르밤바와 비루가밤바를 정복했다. 1471년 빠치쿠치가 아들 또빠잉카에게 왕위를 물려줄 무렵 잉카는 볼리비아에서 칠레에 이르기까지 약 4800킬로미터의 대제국을 거느렸다. 잉카의 석조건축물은 최고의 수준이며, 태양신이 최고의 신이었다. 1525년 와스카르가 12대왕이 되었고, 이때 왕권 다툼으로 허수아비 13대왕이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추대되었으나 1533년 11월 15일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쿠스코 입성으로 잉카는 멸망했다. 쿠스코나 마추피추(Machu Pichu)는 잉카의 실존을 밝혀주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5. 그 밖의 문명

올메까(Olmeca) 문명

멕시코 계곡을 중심으로 B.C. 1500년경부터 옥수수 농경이 펼쳐졌다. 약 500년이 지난 후 멕시코만 연안에서 일어난 올메까 문화는 고도로 체계적인 종교를 지니고 있었다. 베라꾸르즈(Veracruz)근처의 라 벤따(La Venta)지역에는 올메까 문화의 특징인 눈을 치켜뜨고 반달 모양으로 입의 양쪽 끝을 아래로 구부린 거대한 인간형상의 석조상, 피라미드, 검은 토기 등이 발견된다. 특히 인간과 동물의 결합상, 괴기 인간상 등은 중미인들의 사상적 근간을 이루었다. 이 문화는 B.C. 1000~600년경이 전성기였다.

떼오띠우아깐(Teotihuacan) 문명

멕시코시티의 북부지역 분지에서 발생한 떼오띠우아깐 문화는 B.C. 20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A.D. 100~300년경에는 태양의 피라미드(Piramide del Sol)와 달의 피라미드(Piramide de la Luna)가 세워졌고, 물의 신 뜰랄록(Tlaloc)에 대한 신앙이 시작되었다. 신전과 신관을 중심으로 하는 대도시가 이루어지고 거대한 신전이 축조되었으며 그곳에는 새의 털을 지닌 뱀의 신인 께짤꼬아뜰(Quetzalcoatl)이 있었다. 그는 인간과 신의 중개자이며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정치적 지도자였다. 9세기 중엽 북쪽에서 온 침입자에게 멸망 당했다.

사뽀떼까(Zapoteca) 문명

A.D. 600~900년경에 멕시코 고원의 남쪽에 있는 오하까(Oaxaca)분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명이 발생했다. 돌조각과 상형문자, 천문학이 발달하였고, 윗니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특징인 토기를 만들었다.

모치까(Mochica) 문명

페루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고대의 옥수수 신인 자가야를 섬겼던 모치까족은 떼오띠우아깐보다 금속을 먼저 사용했으며 전쟁을 많이 했던 종족이었다. 전쟁에 대한 기록은 모치까의 토기에 생생히 남겨져 있다.

미슈떼까(Mixteca) 문명

멕시코 남부에서는 사뽀떼까족의 뒤를 이어 몬떼 알반(Monte Alban)과 미뜰라(Mitla)를 중심으로 미슈떼까 문명이 번성했다. 그들은 금속 세공과 회화에 특이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챠빈(Chavin) 문명

에콰도르 지역에서 B.C. 1000~400년경에 발달한 초기문화로 건축과 도자기에서 뛰어났다.

따이노(Taino) 문명

카리브해 에스빠뇰라 섬에 살았던 아라왁(Arawak) 인디언으로 스페인 정복 후 100년 만에 멸족되었다. 돌과 나무 공예품으로 유명하다.